상용화된 양자컴퓨터의 칩(확대 사진) <출처 © D-Wave systems>
2013년 7월 구글과 NASA는 세계 최초의 공인 양자컴퓨터 ‘D-WAVE 2’를 확보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외계인 연구나 인공지능 역할을 할 거대한 검색엔진 연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양자컴퓨터는 ‘512큐빗 베수비우스’ 칩으로 연말까지 미 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센터 우주연구협회센터 안에 설치된다.
전세계 물리학자들은 양자컴퓨터가 열어줄 세상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계산하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기상이변, 우주 현상, 유전정보 등을 훨씬 빠르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양자컴퓨터가 무엇이기에 과학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일까.
양자컴퓨터 안에 쓰이는 CPU 칩. 지금 보이는 칩은 1초에 128큐빗(qubit)을 처리한다. <출처 (cc) D-Wave Systems>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양자컴퓨터란 한 마디로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한 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종전의 컴퓨터와 달리 1개의 처리장치로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정보처리량과 속도에서 월등히 앞선다.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지금의 슈퍼컴퓨터가 150년에 걸쳐 계산해야 할 것을 4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된다.
암호해독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열쇠였다. 과거에는 사람이 수학 지식을 동원해 암호를 직접 풀어냈다. 하지만 암호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사람의 머리로 암호를 푸는 데는 한계가 왔다. 이 때문에 컴퓨터를 암호해독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는데, 이것이 바로 양자컴퓨터의 출발이었다.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은 1982년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 만들었고 1985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데이비드 도이치가 구체적인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정리했다. 그 뒤 1944년 미국 벨전화연구소의 피터 쇼어가 커다란 수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을 발견했다. 이 연구를 활용해 1997년, IBM의 아이작 추앙이 2비트 양자컴퓨터를 처음 만들었다. 1999년에는 일본의 NEC가 양자컴퓨터용 고체 회로 소자 개발에 성공했으며, 2003년에는 일본 NEC와 이화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양자 비트 2개를 결합한 고체 논리 연산회로로 동작하는 양자컴퓨터 제작에 성공했다.
한국도 양자컴퓨터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선 200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이 병렬 처리 3비트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다. 2010년에는 양자컴퓨터의 핵심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KAIST 연구팀은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자스핀 수명을 종전 대비 100만배나 늘렸다. 전자스핀은 양자컴퓨터의 기본 연산자 역할을 한다. 전자스핀 수명이 길면 길수록 양자컴퓨터 개발이 쉬워진다.
연산 처리에 ‘비트’가 아닌 ‘큐빗’을 활용
기존 컴퓨터는 0과1로 표시되는 2진법 논리를 사용한다. 우리가 쓰는 데스크톱PC는 스위치를 켜거나(1) 끄는(0) 방식으로 2진법을 구현한다. 0과1이라는 정보를 활용해 각종 계산 작업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한 비트에 하나의 정보가 저장되니, 천 개의 정보를 저장하려면 최소한 천 비트, 만 개의 정보를 저장하려면 최소 만 비트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전혀 다른 원리를 이용한다. 양자역학에서는 다른 상태가 가능한 입자의 상태는 '가능한 여러 가지 상태의 중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를 응용한 게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2진법이 아닌 ‘큐빗(qubit, 큐비트)’이라 부르는 양자 비트 하나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큐빗 2개로는 00.01.10.11의 22=4개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큐빗 n개로는 2의 n제곱만큼의 상태를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 큐빗 수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 놀라운 점은 양자컴퓨터가 어떤 연산을 하면 중첩된 상태는 모두 한꺼번에 독립적으로 연산이 된다는 것이다.
기존 컴퓨터도 연산을 빠르게 하게 하기 위해서 병렬처리라는 방법을 써서 연산을 한다. 양자컴퓨터에서 중첩된 상태가 한꺼번에 연산되는 것은 기존 컴퓨터의 병렬처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기존 컴퓨터가 10비트의 연산을 하고 싶다면 1개의 연산장치가 10번의 연산을 하던지, 10개의 연산장치를 동원해서 병렬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양자컴퓨터가 10개의 큐비트를 쓴다면 한꺼번에 10개의 연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210개 즉, 1024개의 연산이 된다.
D-WAVE사가 만든 양자컴퓨터 D-WAVE 1에 들어간 칩. <출처 (cc) Steve Jurvetson (jurvetson at Flickr>
2011년부터 상용화 시동
D-WAVE사가 만든 양자컴퓨터 D-WAVE 1 모습. <출처 © D-Wave systems>
양자컴퓨터는 획기적인 개념이지만, 상용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1년 5월, 캐나다 기업인 D-WAVE는 첫 번째 상용 양자컴퓨터 ‘D-WAVE 1’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무려 양자 128개의 큐빗을 활용했다. 가격은 약 1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억원이 넘는다.
128큐빗이 사용되었다는 말은 2의 128제곱 개의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제품은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인 록히트마틴에서 구입했다. 이 제품의 후속 제품인 D-WAVE 2를 최근 구글과 NASA가 구입한 것이다. D-WAVE 2는 512개의 큐빗을 활용했으니, 2의 512제곱 개의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러면, 실제의 양자컴퓨터는 얼마나 빠를까? 캐나다의 캐서린 맥그로치(Catherine McGeoch) 교수가 실험을 해본 결과 D-Wava사의 439큐빗의 양자컴퓨터는 수학적으로 어려운(NP-hard) 문제를 푸는데 일반 컴퓨터 보다 3600배, 503큐빗의 양자컴퓨터는 약 1만배 정도 빠르다는 결론을 냈다.
활용은 아직 난제가 많아
상용화의 걸음마를 떼긴 했지만, 양자컴퓨터를 실제 연구에 활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반 컴퓨터처럼 손쉽게 양자컴퓨터를 쓰려면 먼저 넘어야 할 벽이 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연산속도는 빠르지만, 기존 컴퓨터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양자컴퓨터 역시 풀 수 없다. 충분한 시간과 메모리가 주어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일반적인 연산을 처리할 알고리즘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소인수분해 문제, 이산 로그 문제, 양자 푸리에 변환 등의 연산을 위한 알고리즘이 개발돼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빠른 속도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아주 빠른 처리 속도를 자랑해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연구 분야는 제한적이다.
또한 양자컴퓨터는 매우 섬세하다. 작은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계산상 오차를 일으키기 쉽다. 철저하게 관리하는 실험실이 아닌 이상, 사용 과정에서 CPU에서 상당한 발열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냉각 기기를 도입하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 탓에 엉뚱한 계산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한다. 일반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컴퓨팅 언어가 양자컴퓨터에선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마치 미국인에게 열심히 한국어로 떠들어봤자, 소 귀에 경읽기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양자컴퓨터를 다루기 위해선 양자컴퓨터를 위한 언어가 개발돼야 한다. 구글과 NASA 등 세계 연구기관이 양자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언어를 개발 중이다.
이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의 미래는 밝다.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면 현재로서는 계산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잡한 연구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기 예보나 우주 현상도 지금보다 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를 예측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발행2013.07.11.